여행후기
익산 4대 종교 성지 기행
- 작성자 옥창열,옥창열
- 등록일 2025-10-26
- 조회수29
익산 4대 종교 성지 기행
옥창열
10월의 가을 하늘이 유난히 높던 날, 나는 익산행 SRT에 올랐다. 익산시가 주관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한 ‘4대 종교 성지순례’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오래전부터 신(神)과 종교에 대한 관심으로 국내외 성지를 순례하고 글을 써온 내게, 1박 2일간의 이번 행사는 무척이나 소중한 기회였다. 한 도시에서 원불교, 불교, 기독교, 천주교라는 네 거대 종교의 성지를 한데 모아 순례한다는 기획 자체가 한국의 종교적 관용과 역사를 상징하는 듯했다.
첫 방문지는 원불교 중앙총부였다. 하얀 상의에 검정 치마를 단정히 입은 여성 교무가 우리를 맞이했다. 이곳은 승려나 직원 모두를 교무라고 부른단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만난 아미쉬 공동체 신자들의 단정한 매무새가 떠올랐다. 결혼도 할 수 있고, 일상에서 마음공부를 실천한다는 그들의 수행 방식은, 내가 알던 불교의 모습과는 또 달랐다.
그 여성 교무의 안내에 따라 명상 체험이란 걸 했다. 강당에 방석을 드문드문 놓고, 그 위에 앉아서 좌선하는 것인데, 아무렇게나 하는 게 아니고 요령이 있었다. 좌선이나 염불을 하면 몸 안의 화기를 끌어내리고 수기를 올라오게 하여 심신을 안정시킨다는 이론은 책에서 보아 알고 있었지만, 실제 체험은 처음이라 신선했다.
명상 후에 원불교가 일반 불교와 무엇이 다른지도 배웠다. 원불교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본불로 삼고, 교조 소태산 박중빈의 가르침으로 그것을 실천하려는 종교라고 했다. 불상 대신 하나의 원(圓)으로 진리를 상징하는 일원상(一圓相)을 모시고, 출가와 재가의 구분을 완화하여 일반인도 수행의 주체가 된다는 점이 전통 불교와 구별되는 지점이었다.
점심 후, 우리는 아가페 정원을 찾았다. 천주교 영명 수도원 부지에 조성된 이 정원은 박희성 프란치스코 신부가 1990년대에 시작한 부랑인 구제활동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수용자들이 귀한 나무들을 심어 조성한 이곳은 수십 년의 세월을 거쳐 자연과 신앙이 조화된 치유의 공간으로 피어났다. 버려진 이들을 품은 손길이 지금은 일반 순례자들의 쉼터가 되었다. 초가을의 햇살 아래, 기도길을 걷는 내내 마음이 따뜻했다.
이어서 찾은 곳은 백제 시대 최대 사찰 터인 미륵사지였다. 이곳에서 만난 해설과 스님과의 차담은 백제 역사 속으로 깊숙이 우리를 이끌었다. 이곳 익산은 서동 설화의 주인공인 무왕(武王)이 태어나 자란 곳이며, 왕이 된 후 왕궁과 미륵사를 지어 수도를 천도하려 했던 염원의 장소이다.
나는 석탑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특히 서탑은 새 돌과 옛 돌이 섞여 있었는데,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뜻이 그대로 느껴졌다. 반면 전면 복원된 동탑은 무게를 이기지 못해 금이 갔다고 했다. 오랜 지혜를 되살리는 일은, 단순히 외형만 닮는다고 되는 일이 아님을 배운다.
무왕은 천도를 시도했지만 결국 사비 귀족들의 반대로 실패했고, 익산은 제2의 수도, 소경처럼 남았다. 그런데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쌍릉에 잠든 그가 미륵불의 재림처럼 다시 백제를 세우려 했던 열망은, 석탑 위를 날던 까마귀 한 마리에도 서려 있는 듯했다.
미륵산 너머 심곡사는 황산벌 전투에서 숨진 병사들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지은 절이란다. 익산은 충남 논산과 접경하는 곳으로, 심곡사에서 내려다보면 황산벌이 바로 눈 아래 펼쳐져 있다고 한다.
가을 해는 짧아서 금강 하구의 성당포구 마을에 닿았을 때는 이미 어두워진 뒤였다. 이곳은 호남 최대의 곡창인 만경평야를 품고 조운선이 드나들던 곳. 백제 부흥군과 왜의 지원군이 나·당 연합군과 싸워 참패했던 백강 전투가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이 지역에서 난 재료로 만든 음식으로 푸짐하게 저녁을 먹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세월 탓인지 몸이 너무 노곤했다.
다음 날 아침, 문인 동료들과 금강 하구 제방을 따라 산책했다. 물안개 속에 물새와 버드나무가 어우러진 풍경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오래전, 백강 전투의 패배를 품은 그 물길은 여전히 묵묵히 흐르고 있었다. 영욕의 모든 역사를 뒤로하며 금강은 오늘도 아무 말 없이 제 갈 길을 간다.
오전에는 먼저, 이 지역 개신교 선교의 출발점인 두동교회를 방문했다. 이곳은 1900년 미국 남 장로교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전북 지역 최초의 개신교회로,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거부 등 항일 기독교 정신의 거점 역할을 한 중요한 성지였다. 목사님의 재미있는 설명을 통해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소박하면서도 단단했던 믿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서 금강 언덕 위에 자리한 천주교 나바위성당을 순례했다. 이곳은 1836년 조선 최초의 외국인 모방 신부의 상륙지이자, 1846년 김대건 신부가 체포되기 전 활동했던 성스러운 땅이었다. 아름다운 붉은 벽돌의 고딕 성당 건물은, 격동의 조선 후기에 목숨을 걸고 이 땅에 들어와 신앙을 전하려 했던 이들의 희생을 묵묵히 증언하고 있었다.
점심 식사 후, 마지막으로 고스락 장독대 마을을 찾았다. 하림에서 운영하는 장 숙성장은 수천 개의 장독이 빚는 풍경만으로도 장관이었다. 전통은 한 그릇 된장 안에도 살아 있었다. 강된장 하나에도 수십 해를 거쳐 내려온 손맛이 있었고, 익산의 시간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익산역으로 돌아와 SRT에 몸을 실으며, 이틀 동안 얻은 배움과 깨달음의 무게를 되새겼다. 익산은 백제 천년의 꿈과 미륵불의 미래, 네 종교의 교리, 그리고 전통 장맛의 깊은 기다림까지, 모든 것을 품고 있는 도시였다. 백강 전투의 슬픔 위에서 피어난 성당포구의 평화를 목격하였고, 종교 성지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인간의 구원과 화합의 염원을 확인했다. 익산시가 뜻깊은 기획을 해준 데에 감사한다.
https://youtu.be/44ZDUgX49Q0
익산의 노래
- 하늘 아래 하나되어
-옥창열 작사 SUNO 작곡 노래
1
미륵산 아래 대가람을 짓고
부처의 가피를 기원하던
백제의 꿈이 천년 세월 넘어
영롱히 살아 금강을 마주하네
진리의 일원상 가슴에 품고
정갈한 매무새로 마음을 다해
고요한 명상 속 나를 비추며
번뇌와 집착을 씻어가네
하늘 아래, 우리 모두 하나
신의 이름 달라도
서로를 안아주는 땅
익산에 피는 화합의 노래
구원은 가까이 있어
바라봐줘, 닿을 수 있어
2
두동교회엔 작은 나무 십자가
항일의 믿음, 숨결로 남아
낡은 벽 안에 스민 고백들은
기도처럼 조용히 빛나고 있어
나바위 언덕, 붉은 벽돌 사이
조선의 순교자, 이름도 없이
금강 물결에 잠든 이들의
신앙은 불빛 되어 타오르네
하늘 아래, 우리 모두 하나
기도의 모습 달라도
서로를 바라보는 맘
익산에 흐른 화합의 노래
구원은 멀지 않아
마주 보면, 닿을 수 있어
마주 보면, 닿을 수 있어
* 옥창열 : 시조시인/수필가
익산 4대 종교 성지 탐방(유튜브 영상)
https://youtu.be/H1RADA8Xx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