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세양(蘇世讓, 1486∼1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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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201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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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의 문신·문장가. 자는 언겸(彦謙), 호는 양곡(陽谷), 본관은 진주(晉州), 금마 출신. 자파(自坡)의 아들. 대사간 세량(世良)의 아우. 1504년 진사가 되고 1509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 벼슬을 거쳐 정자(正字)·주서(注書)·부수찬(副修撰)·정언(正言)을 역임하고 수찬(修撰)이 되어 단종 어머니인 현덕왕후(顯德王后)의 복위를 건의하여 현릉(顯陵)을 이장하게 했다. 1514년에 휴가를 얻어 독서를 했고, 이조정랑(吏曹正郞)·장악원첨정(掌樂院僉正)·장령(掌令)·사인(舍人)·교리(校理)·직제학(直提學)을 지내고 사성(司成)이 되어 1521년 영접사(迎接使) 이행(李荇)의 종사관으로 명나라 사신을 맞아 시문(詩文)으로 응답하여 문명을 떨쳤다. 그 후 직제학(直提學)·동부승지(同副承旨)·왕자사부(王子師傅) 등을 거쳐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로 나갔다가 1530년에 왜구의 방비를 소홀히 했다 하여 파직되고 이듬해 다시 기용되어 형조판서(刑曹判書)·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한성부판사(漢城府判事)를 지내고 1533년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올라 진하사(進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35년에 형·호조판서(刑·戶曹判書), 1537년에 병조판서(兵曹判書)·이조판서(吏曹判書)를 거쳐 우찬성(右贊成)이 되어 양관대제학(兩館大提學)을 겸임하고 이듬해에는 성주의 사고(史庫)가 불타자 왕명으로 춘추관(春秋館)의 실록을 등사해서 봉안했다. 1545년에 인종이 즉위하자 대윤(大尹)인 윤임(尹 任)일파의 탄핵을 받고 사임하였다. 명종이 즉위하자 을사사화(乙巳士禍)로 윤임 등이 제거된 뒤 다시 기용되어 좌찬성(左贊成)을 지내다가 사직하고 고향인 익산에 은퇴했다. 문명이 우리나라 뿐아니라 중국에까지 널리 퍼졌으며 특히 율시(律詩)에 뛰어났고 서도에도 능하여 송설체(松雪體)를 잘 썼다. 중종·명종조의 삼절(三絶)중의 하나이며, 형 세량(世良)과 함께 본도(本道)가 배출한 명현중의 명현이라 할 것이다. 익산의 화암서원(華巖書院)에 제향되었으며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저서로 <양곡집(陽谷集)> 10권이 있다. (제10편 문화예술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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