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인함(尹仁涵, 1531∼1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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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201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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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의 문신. 자는 양숙(養叔), 호는 죽재(竹齋), 본관은 파평(坡平), 첨정 응규의 아들, 익산군 출신. 1553년에 진사가 되고, 1555년에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검열(檢閱)·대교(待敎)를 거쳐, 1559년에 정자(正字)가 되었다. 이어 저작(著作)·박사(博士)·부수찬(副修撰) 등을 지내고, 1561년 병조(兵曹)와 이조(吏曹)의 좌랑(佐郞)을 역임하고, 명종 18년 이조정랑으로 재직중 동료들에게 전선(銓選)에 관한 기밀을 누설한 죄로 파직당했다. 후에 등용되어 공조(工曹)와 호조(戶曹)의 참의(參議)를 거쳐 1584년 동지사로 명나라에 다녀오고, 1592년 임진왜란 때 경주부윤으로서 적을 막지 못한 죄로 좌천되었으나 경주가 함락되자 의병을 모집하여 많은 적병을 죽였다. 호조참의(戶曹參議)에 재임된 뒤 선조 30년 형조참판(刑曹參判)으로 영위사(迎慰使)를 겸하여 명나라 장수를 평양으로 출영나갔다가 객사했다. 문장과 그림에 능했고, 특히 대(竹)을 잘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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