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시우(楊時遇, 1563∼1638)
- 담당부서 관리자
- 등록일 201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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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의 문신. 본관은 남원. 자는 형언(亨彦), 호는 성천(聖泉), 진사 사헌의 아들. 금마면 출신. 1601년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613년 문과 별시방(文科別試榜)에 급제하였다. 그런데 익산에 소명국이란 불륜의 사람이 있어 그를 처벌하여 달라는 글을 올려서 소명국을 사헌부에서 잡아다가 죄수로 다스렸는데 소명국이 옥중에서 그의 종제 양시진과 그와 신경희 등이 능창군(綾昌君)을 세우려는 역모를 하였다고 거짓 고변을 하는 바람에 여기에 연루되어 갑산(甲山)으로 유배되었다. 그 후 인조반정이 일어나서 그의 무고함이 밝혀져서 풀려나왔다. 그로부터 관계에 나아가서 병조정랑, 예안현감 등을 지냈다. 그러나 그는 노령이었기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용화산 아래에 정사를 짓고 후진을 기른 것이 자기의 책임이라 믿고 많은 인재를 길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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