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열(李仲悅, 1869∼1928)
- 담당부서 관리자
- 등록일 201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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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사회운동가. 호는 좌암(佐庵), 3·1운동 당시 천도교(天道敎) 이리교구장으로 있으면서 의거에 앞장섰다. 최재붕(崔在鵬) 등 많은 동지들을 규합하여 손병희(孫秉熙)와 긴밀한 연락 아래 독립선언문을 호남지방에 붙이거나 배부하는 등 독립운동을 주도하다가 1919년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서 1년간 옥고를 치렀다. 이리시 유지 신정묵(申廷默), 유광현(柳光賢) 등 24명이 아들 완택(完澤)과 힘을 모아 이리시 신용동 계문초등학교 정문 앞에 추모비를 건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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