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익산소개

이공수(李公遂, 1308∼1366)

  • 담당부서 관리자
  • 등록일 2011-12-01
  • 조회수1146
고려후기의 문신. 본관은 익산이며 문헌공(文獻公) 애(崖)의 아들이다. 고려말에 감찰규정(監察糾正)으로 문과에 급제하고 전의주부(典儀主簿)를 거쳐 전교부령(轉校副令)에 올랐다. 충목왕 때에 지신사(知申事), 감찰대부(監察大夫)르 역임하고 공민왕 때에 첨의평리(僉議評理)를 거쳐 평장사(平章事)가 되었으며, 익산부원군(益山府院君)에 봉해졌다. 1362년(공민왕 11)에 홍건적 토벌에 공을 세웠고 이듬해 사신으로 원나라에 가서 폐위된 공민(恭愍)의 복위를 주청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원나라 태상예의원사(太常禮儀院使)가 되어 계속 머무르는 한편, 본국으로부터 좌정승(左政丞)에 임명되었다가 덕흥군(德興君)의 일당이라는 혐의로 본국의 파면처분을 받았다. 1364년 고려입국에 실패한 최유가 다시 군사를 일으키려 한다는 정보를 본국에 알려줌으로써 혐의가 풀려 영도첨의(領都僉儀)에 추충수의동덕찬화공신(推忠守義同德贊化功臣)이 되었다. 이 해 공민왕의 복위로 귀국하여, 진행중인 국학(國學)의 수축비용으로 원제(元帝)에게서 받은 금대(金帶)를 희사하여 더욱 이름이 높아졌다. 이 때 정권을 잡은 신 돈(辛 旽)의 시기로 관직에서 쫓겨났으나 뒤에 익산부원군에 다시 봉해졌다. 문장으로 일국을 흔들었고, 국학의 수축을 비롯하여 유교진흥에 공적이 컸다. 공민왕의 묘정(廟廷)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첨부파일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