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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소개

임 규(林 圭, 1863∼1948)

  • 담당부서 관리자
  • 등록일 2011-12-01
  • 조회수1304
독립운동가, 교육가, 자는 형여(亨如), 호는 우정(偶丁) 또는 북산(北山). 본관은 평택, 오위장(五衛將) 노상(魯庠)의 아들, 금마면 출신. 1895년 일본에 가서 동경 경응의숙(慶應義塾) 중학교 특별과에 입학, 졸업하고 동교 전수학교(專修學校) 경제과를 졸업한 뒤 한국인 유학생을 위한 학교를 설립하여 일본어를 가르쳤다. 해공 신익희와 고하 송진우도 그 제자다. 그는 1909년 일본에서 돌아와 서울에 있으면서 배재학당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는 1919년 3·1운동 국민대표 48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활약하다가 일본에 건너가 일본의 귀족원·중의원을 비롯한 각요로에 독립선언서와 독립청원서를 발송함으로써 체포되어 본국에 압송되었으나 1만에 풀려 나왔다. 형무소에서 출옥한 그는 각 사립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며 독립운동을 계속하였고, 보천교주(普天敎主) 차경석(車京石)으로부터 5만원의 큰 돈을 얻어 나용균(羅容均)을 시켜 상해 임시정부에 보낸 일을 비롯하여 그밖의 여러 사람에게서도 돈을 모아 임시정부에 보냈다. 수복 후 송진우·김성수·백관수 등과 긴밀하게 지내면서 한국 민주당에 힘을 보태다가 1947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저서에 <일어자통(日語自通)>이 있고, 문집으로 <북산산고(北山散稿)> 인쇄본 1책이 있는데, 내용은 우국 열사와 관련된 한시가 많다. 1963년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 표창이 주어지고, 1977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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