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영복(蘇永福)
- 담당부서 관리자
- 등록일 201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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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의 학자. 호는 사은(四隱), 본관은 진주(晉州) 대사간 세량(世良)의 증손, 선조대에 진사시에 합격한 뒤 벼슬길을 단념하고 고향 금마의 도천에 서당을 세우고 일평생 학문 연구에 전심하였다. 김부휘(金敷輝)의 문하에서 사사하였고 학행이 높고 깨끗하여 경세재(經世才)가 있으므로 재신이 천거하여 참봉(參奉)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고 후학을 가르치며 일생을 마치니, 장일(葬日)에 모인 옛친구와 문생이 7백여 명이나 되었다 한다. 사계 김장생(金長生), 우복 정경세(鄭經世), 구암 한백겸(韓百謙), 중봉 조헌(趙 憲) 등 당대의 석학들이었다. 그는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고 예학(禮學)에도 밝았다. 문집이 전하여 익산의 화암서원(華巖書院)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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