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기(李秉岐, 1891∼1968)
- 담당부서 관리자
- 등록일 201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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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자·시조시인. 호는 가람(嘉藍), 본관은 연안(延安), 여산면 출신. 어려서 한문을 배우다 전주공립보통학교에 들어가 졸업한 뒤 1910년 관립 한성사범학교(漢城師範學校)에 입학하였다. 그 해에 한일합방이 되어 낮에는 학교에 나가고 밤에는 조선어 강습원에 나가 주시경으로부터 「조선어 문법」강의를 들었다. 1913년 한성사범을 졸업한 후 전주로 돌아와 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1년에는 권덕규·임경재·최두선 등과 함께 조선어 연구회를 조직하여 활약했고, 1922년부터 동광·휘문고등보통학교 교원으로 들어가 조선어 및 습자(習字)를 가르쳤고, 1926년부터는 교외활동으로 시조에 대한 논문과 시조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1930년에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의 제정위원과 조선어 표준어 사정위원(査定委員)이 되었다. 1942년 소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홍원형무소에서 1년간 옥고를 치르고 1943년에 나와 고향으로 돌아왔다. 1945년 해방을 맞아 미군정청 학무국 편수관(編修官)으로 취임했고, 1946년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전임강사로 부임했으며, 1951년 전주 명륜대학(明倫大學)교수로 부임했다. 1952년 명륜대학이 전북대학이 되자 전북대학 문리과대학 학장이 되었다. 1956년 전북대학교에서 정년퇴임하고 서울로 올라가 서울대학교 강사로 있던 중 1957년 뇌일혈로 병석에 눕게 되었다. 1960년 학술원 공로상을 받았고, 1962년 문화포장을 받았다. 1968년 고향 여산에서 사망하여 전북도 문화인장(文化人葬)으로 치상했다. 1969년 전주 다가산에 가람시비(詩碑)가 섰다. 저서에<가람시조집>, <역대시조선>, <인현왕후전(仁顯王后傳)>, <의유당일기(意幽堂日記)>, <근조내간선(近朝內簡選)>, <요로원야화기(要路院夜話記)>, <가루지기타령>, <국문학전사(國文學全史)>, <국문학개론>, <가람문선(嘉藍文選)>, <가람일기> 등이 있다. (제10편 문화예술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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