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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소개

오 직(吳 稷, 1574∼1619)

  • 담당부서 관리자
  • 등록일 2011-12-01
  • 조회수1291
조선 중기의 무신, 충신. 자는 사형(士馨), 호는 삼송정(三松亭), 본관은 해주, 응정의 차자, 욱의 아우, 용안면 출신. 16세에 성균 진사가 되고 18세에 음직(陰職)으로 선전관(宣傳官)이 되어 비변랑(備邊郞)을 겸했다. 다음해인 1592년에는 전라도 금구현령(金溝縣令)이 되었고, 1594년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그때 그의 큰아버지 오응태는 함경도 북도 병마절도사(北道兵馬節度使)였으며 오직은 그 막하에 들어 함경영장(咸鏡營將)이 되었다. 1597년의 정유재란에 오직의 아버지 응정과 형 욱, 그리고 동생 동량은 남원성에 있었는데 마침내 왜군의 공격으로 성이 함락되자 아버지와 형, 아우 3부자가 같이 화약에 불을 질러 폭사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침 큰아버지 응태가 전라도 병마절도사(全羅道 兵馬節度使)가 되었으므로 오직도 같이 남원으로 가 그 아버지와 형제의 시체를 찾으려 했으나 찾지 못하고 초혼(招魂)하여 고향 용안에 모셔다가 장사지내고, 벼슬을 그만두고 집에 있었다. 그러다 20년 만인 1617년에 군기시 주부(主簿)에 임명되었고, 1618년 오위도총부 도사(五衛都摠府 都事)가 되었다. 그때 후금의 누르하치(奴兒哈赤)가 요동을 공격하였으나 명(明)은 그를 막을 수 없어 조선에 원병을 청했으므로 1618년에 조명군(助明軍)이 편성되었다. 조명군의 도원수(都元帥) 강홍립과 부원수(副元帥) 김경서는 오 직을 우영천총(右營千總)에 임명하였으므로 1619년 압록강을 건너 심하(深河)에서 후금군(後金軍)과 교전하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명군은 전멸하고 조선군의 강홍립과 김경서, 우영장(右營將) 이일원, 좌영천총(左營千總) 신충업 등 모두가 후금군에 항복하였다. 그러나 오직과 우영장(右營將) 김응하만은 끝까지 항전하다 힘이 다하여 죽었다. 인조때 선무원종 일등공신(宣武原從 一等功臣)에 봉해지고, 정려(旌閭)가 내렸으며, 영조 때 병조판서(兵曹判書)에 가자(加資)되었다. 용안 충렬사(忠烈祠)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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