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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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리
1914년 신리·신중리·기린리의 전 지역과 신하리·신후리·관음리·농흥리·모산리 그리고 남이면의 오산리와 임피군 남이면의 신평리와 하주리의 각 일부로써 구성되었다.
- 신오산·신기뜸 : 1940년경 오산리 내에 새로 생긴 마을이므로 그렇게 이름을 지어 붙였다.
- 원오산 : 오산리가 여러 마을로 분리됨에 따라 가장 먼저 이루어진 마을이라 하여, 또 리의 이름과 구분하기 위하여 '원'을 붙였다.
- 오산 : 뒤 산이 자라의 형상이라 하여 생긴 이름. 따라서 산 이름이 먼저 이루어졌고 그에 따라 마을 이름이 생긴 것. '자라뫼→오산→오산''오'자로 바뀐 것은 1914년
- 신리 : 신리는 새로 새긴 마을이라 하여 일컫는 이름.
- 신중·성암상·고라·새터 : '성암상'은 '상애'에서 갈려 나온 마을이기에 상애와 구분된 명칭으로 '섬안 상애'라 했는데 그것이 줄어 '성암상'이 되었고 '섬안'은 1912년 전까지도 조수와 홍수때 농작물의 피해가 많아 새로 둑을 쌓은 후 섬과 같이 되었다.
- 서오산 : 원오산의 서편에 위치하였기로 붙인 이름.
- 관음 : 전주군에 속했던 때에도 관음이 기록되었으니 '간암리'는 '관음리'의 변한 말이다. 전에 관음사라는 절이 있었다.
- 농흥·세가호뜸 : 농흥은 1960년 경에 지은 한문자 이름이고 '세가호뜸'은 전에는 김해 김씨 세집만 살았기에 생긴 이름이다.
- 모산·모산평·오중·못뚝 : 1972년 모산과 오중이 합쳐 한 분리가 되었다. '모산평'은 새로 간척된 평야로 각지 사람이 모여 살기에 생긴 이름. 모산. '못뚝'은 농흥에서 탑천에 이르는 둑이 있어 생긴 이름인데 지금은 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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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학리
본래 옥야현 지역인데 조선조 때 전주부 서일면에 편입되었다가 1899년에는 익산군에 편입되고, 1914년 학동리의 전 지역과 송만리·학곤리·광양리, 남이면의 오산리와 남일면의 수월리 등의 일부로써 구성됨. '송학리'는 송만리와 학동에서 한자씩 취한 것.
- 학동·도토몰 : 학동은 지형이 학처럼 생겼다 하고 '도토몰'은 도토마리와 같이 생겼다 한다. '도토몰'의 '몰'은 '마을'의 변한 말.
- 광양 부분명-박쪽거리·웃끝이·아래끝이·뒤뜸악 : 광양은 전에는 '고양'으로 쓰였다. 남향으로 양지바른 곳이기에 생긴 이름이다. '박쪽거리'는 바깥쪽의 거리라는 말이고, '뒤뜸악'은 광양리의 뒤뜸이므로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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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리
본래 옥야현 지역으로 이조 때 전주부 서일면에 속했다가 1900년 익산군에 편입되고 1914년 화개동·도교리·가장리·의검리·용궁리·수항리·두문리·장항리의 전 지역과 장중리·신후리·신하리·광양리의 각 일부로써 구성됨
- 용곤리 : 들 가운데로 등성이가 길게 뻗어 그 형상이 용과 같아서 생긴 이름. '관'자를 우리나라에서는 '곳'으로도 읽었다.
- 도교·섬다리 : '섬다리'의 '다리'는 고대에 '들'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섬들'이라는 말인데 그 지형이 낮은 들 가운데의 좀 높은 곳으로 섬과 같고, 일정때 간척하기 이전에는비가 많이 오면 배를 타고 들어갔다.
- 외검·외금산 : 바깥 골의 뜻. '밖골'의 옛말은 '박올'이니 그것이 줄어 '박갈'이 된 것을 '외검'으로 표기한 것. '칼'의 고어는 '갈'이다.
- 가장·가지울 : 뒷산에 가재혈이 있다는 풍수설에서 생긴 이름이라 한다. '가자울'의 '울'은 '골'의 변음이다.
- 상아·도문동·고라 : '뒷상애'는 오산리의 신리의 '상애'와 구분된 이름. '두문동'은 막힌 외딴 곳이라는 뜻에서 익살스럽게 부른 이름이라 한다. '고라'는 오산리 신중의 고라 참조.
- 장항·장리 : 지형이 노루의 목처럼 길게 빠져 '노루목→장항'이다.
- 수항리·수랑니 : 1914년 기록에는 '수항'으로 기록되었다. 옆이 수렁이 많은 물구렁이기에 생긴 이름.
- 중흥·숯구대기 : 중흥은 본시 한문자 이름으로 지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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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만리
본래 옥야현 지역으로 조선조 때에는 전주부 서일면에 속했고, 1899년에 익산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만석리·평영리·연평리·신검리·내검리·장후리·신평리·만상리의 전지역과 만중리·만후리, 북일면의 하시리, 임피군 남일면의 창성리, 만성리, 신정리의 각 일부로 구성되었다. '영만리'는 '평영'과 '만석'에서 한자씩 딴 것.
- 내검·내금산·금매 : 장신리의 '의검'과 구분한 이름
- 만신·진흥 : '만신'은 영만리에 새로 생긴 마을이므로 붙인 이름.
- 만상 : '만상'은 만석리의 윗편에 위치했기로 붙인 이름. '오산막석리'는 전에 북일면 만석리와 임피군 만석리를 구분하기 위해서 오산면의 만석리라는 뜻.
- 연평·잿배기 : 잿배기는 만석리평 중에서는 좀 높은 재가 박힌 곳이므로 일컫는 이름.
- 만중·만하 : '만중'은 영만리의 중앙부에 있고 '만하'는 아랫편에 있으므로 붙인 이름.
- 평영 부분명-두집매·칠호뜸 : 평영은 영만리와 들에서 취한 이름이고 두집매·칠호뜸은 전에는 인가가 그뿐이었기로 생긴 명칭
- 청수 부문명-사절리, 장후리 : 청수는 전에 근처에서는 음료수가 가장 좋아서 생긴 이름이라 한다. '사절리'는 사절리 공동묘지 자리에 절이 있었다. '장후리'는 장항의 뒤에 있는 마을이므로 붙은 이름.
- 신평 : 만석리평 가운데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해서 붙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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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리
본래 옥야현 지역으로 조선조 때에는 전주부 남이면에 속했다가 1899년 익산군에 편입되고 1914년 신기·신석리·화개동·만수동의 전 지역과 신상리·광덕리·광지리·남삼리·북삼리·옥포리, 임피군 남이면의 하주리와 중광리, 만경군 북일도면 월포리의 각 일부로 구성되었다. '신지리'는 신석리와 광지리에서 한자씩 취한 것.
- 신상 : 신지리의 윗편에 위치했기에 붙인 이름. 1920년 경에 이루어진 마을.
- 신후·신화 : 신후는 신석의 뒷마을이므로 붙인 이름. 1930년 경에 이루어진 마을. '신화'는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해서 '새고지 → 신화'. '동척'은 일정 때 동양척식회사의 소유지였으므로 생긴 이름.
- 신석
- 북신석 : 신석의 북편에 위치했기에 붙인 이름
- 광지 : 광절리에는 조선 말기까지 절이 있어 그에서 유래한 이름이라 함. '중광'이나 옥구군 대야면의 상광과 하광도 광절리에서 이루어진 이름.
- 옥포·중광리 : 만경강 하부의 평야부로 전에는 김제군 청하면과 통하는 나룻터가 있었는데 그 나룻터의 이름이 '옥포'였다.
- 월포 : 만경강 하류 지역으로 전에 발달 모양의 포구가 있었다 한다.
- 만수·화개 : 만경강의 제방공사 이전에는 조수가 밀려들었고 홍수 때에는 침수했으므로 '물찬말'이라 했다. 1914년에도 만수동으로 기록되었다.
- 영성·새터 : '쇠바탕'은 소를 많이 매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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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전리
본시 옥야현 지역으로 조선조때 전주부 남이면에 속했다가 1899년 익산군에 편입되고 1914년 전동리·후동리·야전리의 전 지역과 신상리·관음리·신덕리·남참리·북참리·황천리, 서일면의 농흥리 등 각 일부분으로 구성되었다. 남전리와 야전리에서 한자씩 취한 것.
- 남참 : '참문이'를 위치에 따라 남·북으로 구분한 이름. 신지리의 만수동과 같이 물이 차던 곳이니 '차,물'과 관계된 이름이리라 한다.
- 북참 : '남참' 참조.
- 금몽 : 야전리는 '돌밭→야전'이다.
- 동척 : 일정 때 동양척식회사의 소유지였으므로 생긴 이름. 이동척은 동척을 1,2,3,4로 구분한 명칭
- 후동 : 신동리의 뒷마을이므로 붙인 이름.
- 전동 : 신동리의 앞마을이므로 붙인 이름
- 송내·안터 : '송내'는 솔밭무더기의 한문자 표기고 '솔밭 무더기'는 솔밭에 쌓여 있어 생긴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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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천리
본시 옥야현 지역으로 옥야현 남쪽 지역 갯가이므로 '남개'또는 배가 드나드는 포구였으므로 '목천포'라 하였는데 조선조 때 전주부 남일면에 속했다가 1899년 익산군에 편입되고, 1914년 회룡리·회복리·신복리·하신리·신룡리·신평리·목천포리의 전 지역과 동자포리·목상리·수월리, 서일면 송만리 등의 일부로 구성됨. 1917년에 오산면에 편입됨
- 회복 : 만경강의 둑을 새로 쌓기 이전에는 회복 마을 옆에 굽은 둑이 있어 그 둑을 '돌보'라고 하고 '회복'으로 쓰다가 한자가 '회복'으로 바뀌었다.
- 신교·방아다리 : 1972년 위 두 마을을 합쳐 한 분리로 함. 신교는 방아다리 옆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붙인 이름. '방아다리'는 옆 길이 두 편으로 갈라져 마치 디딜방아의 발로 밟는 부분처럼 Y자형으로 생겨 붙은 이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