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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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동
1914년 동ㆍ서영등리, 신성리, 약촌의 전 지역과 궁동, 송내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영등리라 하여 북일면에 소속되었다가 1974년 이리시 영등동이 되었다. 본시 '영등'이라는 명칭은 서영등, 동영등, 골영등 등의 마을 뒤 구릉이 모두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어 긴 등성이라는 뜻의 '긴 등'을 한문자로 영등으로 표기한 것이다.
- 곡영 : '동영등'의 서쪽 골짜기에 있으므로 '골영등'이라 했다.
- 신성 : 동영등의 동남쪽에 새로 이루어진 마을이라 해서 지은 이름.
- 동영 : 영등리의 동쪽이고 특히 서영등리와 위치에 따라 구분된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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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양동
1914년 양지리의 전 지역과 어곳리, 궁동, 동일면의 신량리, 용비리 또두천면의 송정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어곳'과 '양지'에서 한자씩 따서 '어양리'라 하여 북일면에 속했는데 1974년 이리시에 편입되어 '어양동'이 되었다.
- 어곳ㆍ감나무골ㆍ숯구데기ㆍ신기촌(이민촌)ㆍ골말 : '어곳'은 지형이 낮은 들쪽으로 늘어진 곳이기에 '늘곳→늘옷→느릇'이고 한문자로는 '늘''곳'으로 곳은 우리나라에서 '곳(곶)'으로도 읽는 새김자다. '감나무골'은 전에 감나무가 많았었다. '숯구덕이'는 본시 숯을 굽던 곳이었던지 앞 용수로 동쪽 논을 개설할 때도 땅속에서 숯이 많이 나왔다. '신기촌(이민촌)'은 1937년 요교호를 간척함으로써 새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골말'은 감나무골 동남쪽 골짜기에 있어 생긴 이름.
- 궁동 : '궁동'은 마을이 우묵한 곳에 있는데 지형이 활처럼 굽었다. '오막'은 '우묵하다'의 사투리다.
- 팔성ㆍ사창리 : '팔성다리'는 1913년에 대야 저수지 물을 요교호로 보내는 수도를 '터진 목'에 뚫고 그 굴 북편 수로에 다리를 가설할 때 그 공사 일을 하던 공원 8명의 성이 모두 달랐으므로 그 공원들이 자칭 이 다리를 팔성다리라 하자고 했고, 수리 조합에서 그에 따라 다리 이름을 '성'자만 바꿔 팔성교라고 새김으로써 다리이름이 되는 동시에 근처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1914년 이전의 동명이나 교량명에는 '팔성'이라는 명칭이 없다. 지금은 주위가 시가지로 연접되어 구분하기 어렵다. '사창리'는 팔성의 서쪽 마을이었다.
